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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9-09 15:00:01
  • 수정 2019-09-09 15: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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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갈등의 조정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플라톤이 말했던 ‘철인’이 존재한다면 주변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을 쉽게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절대자 철인’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습니다. ‘갈등 조정’에는 숙고하고, 이해하고, 동의하는 과정에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깨닫는 데 필요한 시간입니다.


오늘날 '갈등’을 어떻게 치유하고, 극복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의 성숙도가 판가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갈등’은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는, 조정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과정입니다. ‘갈등의 조정’이 바로 민주주의 참된 가치가 아닐까요?


[내일N 기획: 갈등]은 무겁고 어두웠던 우리 사회 속 갈등을 민주주의 대화 속으로 공론화하려고 합니다. 단박에 해결책을 찾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일N'은 가치있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그 여정을 시작합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중략) 이를 두고 성급한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의 도덕성의 문제로 받아들여 그 인성을 탓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내일 온다 온다 하던 비 한 줄금 내리고 나면 노염도 더는 버티지 못할 줄 알고 있으며, 머지않아 조석의 추량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 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 가고, 그 상처의 자리에서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을 깨닫게 해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여름 징역살이에 대한 일부분이다. 너무도 불평등한 지금의 우리 사회는 신영복 선생님의 여름 감옥과 같아서 바로 옆에 있는 이들에 대한 증오가 일어나기 쉽다. 불평등이라는 뜨거운 감옥의 벽은 사람들을 점점 좁은 곳으로 밀어 넣고 옥죄고 있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감옥에 발을 디딘 우리 세대는 주거에서부터 일자리, 생활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늘 부족했고, 늘 불안하게 살아왔다.


▲ 2019년 3월 16일 열린 제1차 시민사회단체 연찬회. <사진 = 내일N DB>


그러나 기성 정치권과 언론, 기성 사회는 그 벽을 넓히며 모두의 몫을 되찾아주는 일을 하기보다, 부족한 몫을 두고 약자 간의 갈등을 부추겨왔다. 이로 인해 이념과 지역으로 벌어졌던 과거 갈등의 축은, 세대와 젠더로, 비정규직과 정규직 등 사방팔방으로 축이 번지고 있다. 이러한 갈등을 두고 어떤 이는 청년세대가 “이기적이고 보수화되었다”라고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청년 세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세대의 불만의 에너지로 더 과감한 개혁을 이뤄내고 모두의 몫을 되찾는, 즉 우리를 옥죄고 있는 감옥의 벽을 부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과감한 개혁에 미온적이고 부정적 갈등만을 남기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러한 상황은 대체복무제 도입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가뜩이나 부족한 일자리를 두고 공부하고 스펙을 쌓기 모자를 시간에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열악한 군 생활에 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양심적 병역 거부"는 자신들을 “비양심적인 사람들”인 것 마냥 취급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대체복무제가 인정되자, 병사 처우 개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 반발은 컸고, 이로 인해 국방부는 대체복무제를 3년 동안 교도소 근무라는 안으로 결정하였다. 이는 대체복무제의 취지와는 다르게, 징벌적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이유는 결코 20대가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이 없고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더 과감한 방식으로 정책을 펼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사 처우에 대한 20대들의 불만을 동력으로, 병사들에게 최저임금을 주고 비민주적인 군사 문화를 바로잡는 등, 군 개혁을 적극적으로 해왔다면 대체복무제에 대한 반발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20대들이 처한 상황을 보지 못하고 "20대들은 이기적이고 보수화 되었어"라고 하는 반응은, 신영복 선생님 비유에서의 "인성 탓을 하는 성급한 사람"과 같은 것이다.


최근 출간된 <공정하지 않다>라는 책에서는 이러한 20대들의 생각에서 중요한 지점들을 짚어주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81%가 생각하는 세대, 가사분담을 공평하게 해야 한다고 가장 높게 생각하는, 그래서 남녀 역할에 개방적으로 생각하는 세대, 정유라의 “돈도 실력이다”라는 말에 분노해 가장 먼저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이들이 바로 20대라는 것이다.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분노는 사회를 바꾸는 큰 동력이 되어 왔고, 우리 사회의 각종 부조리를 바로잡는 힘이 되어 왔다. 무엇보다 가난의 이유가 개인의 탓이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이고 지금의 우리 사회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진 세습 사회, “신분제 사회” 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세대인 것이다.


청년 세대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이 아니고는 자신의 자산을 형성할 수 없는 세대가 되었다. OECD의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1995년 이후 한국이 선진국들 중 노동생산성 대비 실질 임금 격차가 가장 커졌다. 이는 일하는 이들이 일한 만큼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은 일하는 이들에게 돌아갈 임금을 줄여 자신의 이익을 채우고, 불합리하게 재산을 불려 이를 자신의 자녀 세대에게 물려주고 있다. 이로 인해 최상위 청년층과 청년 다수 사이 부의 격차가 벌어지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미성년자 46,542명이 총 5조 2,473억 원을 상속받았다. 그에 반해 대다수의 20대들은 1인 평균 2,385만 원이라는 빚을 안고 사회에 나서고 있다.


한편에는 평생을 써도 남을 재산을 물려받는 20대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물려받을 건 빚밖에 없는 20대가 있는 것이다. 지난해 상하차 아르바이트 노동 문제를 해결하고자 뛰어다니면서, 그 현실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극심한 폭염에 냉방시설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CJ대한통운에서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 청년이 감전으로 사망했던 일이었다.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 너무나 어려웠는데, 결국 우리나라 최고 대기업은 그 청년의 죽음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편법 경영 승계의 전초전으로 CJ그룹 최고경영자의 20대 자녀에게 수백억 대 자산이 대물림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대학 등록금을 벌고자 포도당 두 알로 버티며 밤새 일하는 20대 청년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백억 대 자산을 물려받은 20대 청년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이러한 세습 사회에 놓여 있다.


생생하게 목격한 이런 현실에 대해 청년들에게 쏟아놓으면, 분노하지 않은 청년들이 없었다. 그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자신과 같은 처지임을 알았고, 누구보다 자기 자신과 관련된 문제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를 이 뜨거운 여름 감옥에 밀어 넣는 이가 누구인지, 진짜 감옥에 들어가야 할 이가 누구인지 정확히 집중해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과거 TV 토론에서 고 노회찬 의원님이 남긴 수많은 촌철살인과 같은 발언들이 있고 그 발언에 늘 감탄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노회찬 의원님의 통찰력이 빛나는 하나의 발언이 있다. (지금의 한일 관계와는 별개로) “외계인이 침공해오면, 한국과 일본이 손이 맞잡는다”라고 했던 발언이다. 그 발언에는 지금의 한국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20대들을 하나로 뭉칠 혜안이 담겨 있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사회가 불공정해질수록 우리 세대의 어려움과 증오가 늘어날 수 있지만, 개개인에게 올바름을 묻거나, 누가 더 잘못인지를 가리는 것으로는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어려움과 증오를 없앨 수 없다. 오히려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불평등을 정확히 가리키고, 함께 손을 맞잡고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더 이상 기득권, 재벌 및 대기업들의 잘못된 욕심을 용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최상위 1%와 다수의 사람들의 사이의 경제적 격차가 벌어지는 속도를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문제와 맞서 점점 더 큰 하나가 될 때만이, 이 뜨거운 여름을 몰아낼 수 있다. 정말 감옥에 가야 할 이들, 기업을 경영위기에 몰아가면서 시민들의 세금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이들,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정치인들을 매수하며 대한민국을 이렇게 불평등하게 만든 이들을 감옥에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이제 8월의 뜨거운 더위가 한바탕 지나가고, 저녁 즈음이면 곧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9월이 시작되었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뜨거운 논쟁들이 벌어지고, 이에 대한 청년세대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여기저기서 표출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각자의 생각과 마음에서 서로 공통점을 발견하고, 하나로 묶일 연대의 가능성이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곳곳에서 올라오고 있다. 이러한 기운에서부터 시작되어, 불평등과 불공정에 맞서는 역동적인 청년세대의 에너지가 대한민국을 공정하고 평등한 복지국가로, 더 나은 사회로 이끌어 줄 것이라 확신한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기성정치권과 언론의 “청년세대 내부 가르기와 갈등 부추기기”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런 가르기를 더 이상 거부한다.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지금의 “신분제 사회”를 타파할 더 과감한 개혁이다. 그리고 그 개혁에는 갈등이 뒤따를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삶을 바꿔나갈 중요한 진짜 갈등에 집중해나갈 것이다.


정혜연 정의당 전국위원


전 정의당 청년본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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