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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3-11 18:36:16
  • 수정 2019-03-12 19: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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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국회에서 열린 ˝교실의 정치화 논란, 해법은 없나˝ 토론회 모습. <사진: 김남미 사진>


미디어 내일N 김남미 기자자유한국당이 2월 국회 보이콧도 모자라 그나마 있는 비례대표석을 아예 없애자고 주장하고나섰다. 현행 300석의 의원정수 감축을 위해 비례대표를 폐지하자는 것인데, 이 안을 적용할 경우 지역구 의원 숫자는 오히려 늘어난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 주장을 펼치면서 내 손으로 뽑을 수 없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라는 표현을 썼다. 유권자가 선호하는 정당에 투표하는 제도를 내 손으로 뽑을 수 없는 후보라는 프레임으로 교묘하게 바꿔치기하는 수사법이 놀라울 따름이다. 하긴, 현란한 말장난으로 원하는 바를 포장하는 한국당 특유의 수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년 전, 김성태 한국당 전 원내대표는 ‘18세는 되지만 고등학생은 안 된다며 학제개편을 선행하자고 주장했다. 이 뜬금없는 제안은 결론적으로 18세 선거권 논의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꼼수였다.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앞당기는 등 학제개편을 완료한 뒤 18세가 투표하기 위해서는 최소 12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한국당이 내세우는 여러 주장은 선거연령하향을 둘러싼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대변한다. 이들의 논리를 통해 교실의 정치화논란의 핵심을 살펴보자.


정치는 삶의 문제, 유권자 교육은 학생의 권리

김성태 전 대표는 지난 해 국회교섭단체 연설에서 ‘18세 유권자가 교복 입고 투표하는 상황을 초래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주장은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말로 기성세대의 보수성을 자극하고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는 학생에게 공부 외에 다른 사회 참여는 필요 없다는 식의 교육관을 만나 힘을 발휘했다.


징검다리교육공동체의 강민정 상임이사는 이에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정치교육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여기는 나라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미국의 모 초등학교에서는 9세 초등학생들이 미 대통령 예비투표(모의선거)를 한다. 투표율이 높기로 유명한 스웨덴에서는 유치원 때부터 민주주의와 투표의 개념을 배우고, 초등학생이 되면 정당의 역사와 철학을 배운다. 영상 속에서 정당 별 정책 특성을 비교하며 자신이 더 선호하는 정당을 밝히는 학생들의 모습이 짧게 비치기도 했다. 한국의 교육이 학생들에게 기능론이나 갈등론 같은 추상적인 개념만 암기시키는 일에 멈춰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나라들은 속물적 현실 정치 vs 순수한 교육(교실)’이라는 가상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두 영역을 적극적으로 뒤섞고 있다. 청소년이 얼마나 정치에 접근할 수 있느냐는 그 나라가 가진 교육철학의 깊이와도 연관된다.


강민정 이사는 말한다. “교육은 단순한 지식을 배우는 게 아니라 우리 삶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이 사는 세상이 어떤 것인가를 12년 동안 공교육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삶의 문제 중에 정치와 관련 없는 건 하나도 없다.”


정말로 문제적인 학교의 정치화는 따로 있다

한국당 의원들이 주로 내세우는 선거연령하향 반대 논리 중 하나는 한국사회의 특수성이다. 정태옥 의원은 한국은 극단적 정치 갈등이 있는 나라라서 안 된다고 발언했고, 정유섭 의원은 교사와 학생의 갑을 관계(로 인해 교사의 정치적 성향이 학생에게 주입될 것)’를 우려했다. 이에 촛불청소년인권법연대의 강민진 씨는 우리는 (교사와 학생의 갑을관계를 비롯해) 학교 현실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권한이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반대쪽에서는 한국의 학교가 이렇기 때문에 참정권을 주면 안 된다고 말한다고 비판했다. 교육 현실을 바꿀 생각은 않고, 바로 그 현실을 핑계로 학생들의 정치 참여를 막아서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극단적 정치 갈등의 문제를 자유한국당 의원이 언급했다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한국당은 최근 5.18 역사 왜곡 논란 등 자극적인 이슈로 정치 지형을 극단적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크게 일조한 곳이기 때문이다. ‘학교의 정치화우려에 대해 이 날 토론회에 참가한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실제로 학교 현장의 정치화는 획일적 사고를 주입하는 게 훨씬 더 정치적인 것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박근혜 전 정권에서 불거졌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시민사회가 부패한 정권을 탄핵하지 않았다면 한국의 역사 교육은 ‘5.18 망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왜곡된 인식을 일반화하는 방향으로 치달았을지도 모른다. 사회가 정말로 경계해야 할 학교의 정치화는 이런 게 아닐까.


정치는 자격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다

배경내 촛청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이 날 토론이 정치적으로 진공 상태인 학교를 가정한다는 게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사람은 어떻게 시민이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남겼다고 평했다.


흔히 청소년 참정권을 반대하는 이유로 판단이 서투르고 미성숙하며 정치에 무지함이 자주 언급된다. 정치적 무지가 선거권을 박탈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의문이 남는다. 현재 선거권을 가진 성인 유권자들은 국내 정당의 정책 기조를 자세히 숙지한 상태로 투표 하고 있나.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불특정 다수의 성인에게 선거개혁의 핵심인 연동형비례대표제가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 이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청소년에게 당장 성숙한 시민이 되지 않으면 참정권을 줄 수 없다고 말하는 한국 사회는 지금 현재 정치적으로 얼마나 성숙한가.


한국사회의 정치는 한국당 의원의 말마따나 극단적으로 일그러져 있다.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시민의 역량은 성인이 된다고 해서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정치와 사회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접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훈련되는 것이다. 촛청법 연대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은 선거권은 나이가 몇 살이든, 정치를 알든 모르든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하는 보편적 시민권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말한다. 정치는 자격이 있어야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아니라고.


김남미 기자 nammi215@usnpartn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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